한번은 잘 알고 지내는 동료의 부모님 칠순 잔치에 초대 받은 적이 있다
가보니 어머님 되시는 분이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운 모습이셨는데
그분이 하객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척 인상 적이었다
이렇게 오래 살아서 제가 칠순을 맞으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올해로 결혼 45주년을맞았는데 제가 영감님한테 그랬어요
당신도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영감님이 저한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고 되묻더군요
생각 해보라세요
저는 처음에 부잣집 귀공자한테 시집을 갔는데 자식 다섯을 낳고 살다가 다시 보니
귀공자는 어디로 가고 얼음 공장 사장하고 살고있지 뭐예요
그때는 얼마나 무섭고 차가웠는지
그러다가 자식들 다 시집 장가 보내고 둘이 남게 되어서 다시 봤더니
그 얼음 공장 사장은 어디로 가고 좁쌀 영감이 하루종일 저만 찾아다니면서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한 남자랑 산게 아니라 여러 명의 남자랑 산 것 같아요
하객들은 아버님 눈치를 보면서 웃느라 정신 없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저게 바로 사랑의 과정이지 싶었다
인생은 시간의 경계에 의해 나뉜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우리는 새로운 발달 과제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란 이렇게 끊임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재발견해가는 과정이다
그 사람을 다 안 것 같아도 살다 보면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내가 미처 모르는
다른 모습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새로운 발견이 때론 실망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그런 발견을 통해서 우리는 늘 사랑을 새롭고 풍부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를 다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재발견할 기회를 놓치지말라
사랑이 식고 그 사랑이 떠나 버리는 것 그래서 사랑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를 알려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김혜남의 에세이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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